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7)

 

μακριοι ο λεμονες, τι ατο λεηθσονται.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긍휼을 어려운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오해한다. 긍휼의 의미는 하나님의 자비를 말한다. 하나님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다가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한 자로 바꾸는 것이다.

긍휼(엘레모네스 λεμονες 기본형은 엘레에모)에서 엘레에모는 문법적으로 동사로 많이 사용되나 여기는 형용사이다. 형용사 용법으로 사용된 경우는 히브리서 217절에서 등장한다.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된 것이다. 출애굽기 346절에서『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라훔) 은혜롭고(한눈)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히브리어 한눈이 헬라어 엘레에모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라훔은 라함이라는 동사에서 비롯되었는데, 위의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그런 모습이다. 우리가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대상은 사람(영적 형제)이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형제의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그래서 긍휼을 입은 자는 아버지의 눈으로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주리고 목마른 자를 바라보는 것이다.이게 사랑인 것이다. 로마서 915절에서『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하나님의 일하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긍휼이 구원의 시작이 된다. 베드로전서 210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레위기 19 18절에서『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사랑의 의미는 영을 살리는 것을 말한다. 형제가 사망에 빠져있는데, 생명의 빛을 전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다. 

요한1 3 14-15절에서『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1 4 20절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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