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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 장 3 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카리오이 )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Μακ ά ριοι ο ἱ πτωχο ὶ τ ῷ πνε ύ ματι, ὅ τι α ὐ τ ῶ ν ἐ στιν ἡ βασιλε ί α τ ῶ ν ο ὐ ραν ῶ ν. 세상의 복은 일시적이지만 , 천국은 영원한 복이다 . 복이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신에게 제사를 잘 지내면 신이 인간에게 풍요를 준다는 그런 개념이 있다 . 이스라엘 백성들도 율법을 잘 지키면 하늘의 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 그런데 , 예수님은 복을 다르게 설명하신다 . 예수님의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 핵심이다 . 천국은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이다 . 마카리오이는 복을 의미한다 . 복은 하나님 나라가 된다 . 『심령이 가난하다』라고 번역된 것을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자로 생각한다 . 그래서 갈급한 마음이라든가 ,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본주의로 말을 한다 . 마음이 아니라 심령이다 . 누가복음 6 장 20 절에서『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여기에서는 가난의 주체가 없다 . 예수님은 가난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 가난하다는 말은 성령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 심령은 프뉴마티 (πνε ύ ματι ), 영 ( 성령 ) 이다 . 이것을 깨닫는 것이 곧 복이 있다는 말인데 , 다르게 표현하면 , 죄를 깨닫는 것이 바로 영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이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찾아오시는 것이다 . 그래서 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된다는 말이다 . 마태복음 11 장 4-5 절에서 ,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μακ ά ριοι ( 마카리오이 : 복 ) ο ἱ( 호이 : 자들 ) πενθο ῦ ντες ( 펜툰테스 : 애통하는 ) , ὅ τι ( 때문에 ) α ὐ το ὶ ( 아우토이 : 그들이 ) παρακληθ ή σονται .( 파라클레데손타이 : 위로를 받다 ) 』 파라클레데손타이 ( 기본형은 파라칼레오 ) 는 슬퍼하다 , 돌이키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 돌이키다 라는 말의 헬라어 ( 파라칼레오 ) 는『파라』 ( 곁으로 ) 와 『칼레오』 ( 위로 , 격려 ) 라는 말의 합성어로 다시 곁으로 불러준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 요한계시록 3 장 17 절에서『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자신은 거지인데 , 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베드로 역시 예수님의 제자였음에도 그는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된 것이다 . 이게 가난한 자이다 .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세번 부인한 것을 두고 애통해 하는 것이다 . 그는 다른 예수를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찾아오신다 . 그리고 세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는다 . 베드로는 주님이 아신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 .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자기가 생각하고 만든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 하나님을 부려 먹는 것이다 . 기복신앙이 대표적이다 .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요청하다가 안되면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 그런데 , 이것을 깨닫는 자가 애통하는 자가 된다 .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 가난한 자인 것이다 . 영적 파산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애통하지 않는 다 . 영적 가난 상태를 깨닫는 자가 애통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 장 4 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μακ ά ριοι ( 마카리오이 : 복 ) ο ἱ( 호이 : 자들 ) πενθο ῦ ντες ( 펜툰테스 : 애통하는 ) , ὅ τι ( 때문에 ) α ὐ το ὶ ( 아우토이 : 그들이 ) παρακληθ ή σονται .( 파라클레데손타이 : 위로를 받다 ) 』 파라클레데손타이 ( 기본형은 파라칼레오 ) 는 슬퍼하다 , 돌이키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 돌이키다 라는 말의 헬라어 ( 파라칼레오 ) 는『파라』 ( 곁으로 ) 와 『칼레오』 ( 위로 , 격려 ) 라는 말의 합성어로 다시 곁으로 불러준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 요한계시록 3 장 17 절에서『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자신은 거지인데 , 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베드로 역시 예수님의 제자였음에도 그는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된 것이다 . 이게 가난한 자이다 .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세번 부인한 것을 두고 애통해 하는 것이다 . 그는 다른 예수를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찾아오신다 . 그리고 세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는다 . 베드로는 주님이 아신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 .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자기가 생각하고 만든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 하나님을 부려 먹는 것이다 . 기복신앙이 대표적이다 .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요청하다가 안되면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 그런데 , 이것을 깨닫는 자가 애통하는 자가 된다 .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 가난한 자인 것이다 . 영적 파산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애통하지 않는 다 . 영적 가난 상태를 깨닫는 자가 애통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μακ ά ριοι ο ἱ πειν ῶ ντες κα ὶ διψ ῶ ντες τ ὴ ν δικαιοσ ύ νην, ὅ τι α ὐ το ὶ χορτασθ ή σονται. 페이논테스 ( πειν ῶ ντες 기본형은 페이나오 ) 는 굶주린 , 가난한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 여기에서는 『주리다』 라고 번역되었다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서 의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다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를 받아야만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 .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는 방법은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다 .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에서 함께 죽을 때 , 하나님께서 의를 주신다 . 『주리고』의 의미는 창세기에서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 애굽의 백성들이 기근이 들어 먹을 양식이 없을 때 한 말들이다 . 『목마르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에서 물이 없어서 모세에게 원망한 일이 있었다 . 출애굽기 17 장 3 절에서『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라고 원망했다 .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라고 했는데 , 모세가 반석을 두번 지팡이로 친 사건이다 .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신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 그래서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룰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아라는 뜻으로 주신 것인데 , 백성들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 예수님이 말씀하시는『주리고 목마르다』는 의미는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 보려고 하다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깨달을 때를 말한다 . 복이 배부르게 된다는 것이다 . 누가복음 6 장 20-21 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 마태복음 5 장 7 절 )   『 μακ ά ριοι ο ἱ ἐ λε ή μονες, ὅ τι α ὐ το ὶ ἐ λεηθ ή σονται. 』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긍휼을 어려운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오해한다 . 긍휼의 의미는 하나님의 자비를 말한다 .   하나님이 가난한 자 , 애통하는 자 , 온유한 자 ,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다가오시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한 자로 바꾸는 것이다 . 긍휼 ( 엘레모네스 ἐ λε ή μονες 기본형은 엘레에모 ) 에서 엘레에모는 문법적으로 동사로 많이 사용되나 여기는 형용사이다 . 형용사 용법으로 사용된 경우는 히브리서 2 장 17 절에서 등장한다 .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된 것이다 . 출애굽기 34 장 6 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 라훔 ) 은혜롭고 ( 한눈 )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히브리어 한눈이 헬라어 엘레에모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 라훔은 라함이라는 동사에서 비롯되었는데 , 위의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그런 모습이다 . 우리가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대상은 사람 ( 영적 형제 ) 이다 .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형제의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   긍휼히 여기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   그래서 긍휼을 입은 자는 아버지의 눈으로 가난한 자 , 애통하는 자 , 온유한 자 , 주리고 목마른 자를 바라보는 것이다 . 이게 사랑인 것이다 . 로마서 9 장 15 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하나님의 일하심을 알 수 있다 . 하나님의 긍휼이 구원의 시작이 된다 . 베드로전서 2 장 10 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마태복음 5 장 8 절 )   μακ ά ριοι ο ἱ καθαρο ὶ τ ῇ καρδ ίᾳ , ὅ τι α ὐ το ὶ τ ὸ ν θε ὸ ν ὄ ψονται.   카다로이 테 카르디아 (καθαρο ὶ τ ῇ καρδ ίᾳ ) 는 마음이 깨끗한 자라는 것이다 . 마음은 육체로부터 나오는 것과 영으로 나오는 것이 있다 . 영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경우 , 마음은 육체로 비롯된 것으로서 감정이나 지식과 경험이나 자신의 의지 등이 반영된다 . 이것은 두뇌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 마태복음 23 장 25 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래서 마음이 깨끗한 자가 된다 . 마음이 깨끗한 자가 임마누엘이 되고 심령 속의 지성소에 그리스도가 임재하시는 것이다 . 그래서 마음이 청결한 것은 하나님의 의의 결과라고 말을 할 수 있다 . 옾손타이 ( ὄ ψονται 기본형은 호라우 ) 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 마음이 깨끗하다는 의미를 시편 24 편 4 절에서『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다 . 시편 19 편 8 절에서『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마음이 청결한 자는 눈을 밝게 하여 ,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다 .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다 . 율법은 순결하다 .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 구원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