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μακάριοι(마카리오이:복)οἱ(호이:자들)πενθοῦντες(펜툰테스:애통하는),ὅτι(때문에)αὐτοὶ(아우토이:그들이)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파라클레데손타이:위로를 받다)』 파라클레데손타이(기본형은 파라칼레오)는 슬퍼하다, 돌이키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돌이키다 라는 말의 헬라어(파라칼레오)는『파라』(곁으로)와 『칼레오』(위로,격려)라는 말의 합성어로
다시 곁으로 불러준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서『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자신은 거지인데, 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의 제자였음에도 그는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된 것이다. 이게 가난한 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세번 부인한 것을 두고 애통해 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예수를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찾아오신다. 그리고
세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는다. 베드로는 주님이 아신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자기가
생각하고 만든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을 부려 먹는 것이다. 기복신앙이 대표적이다.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요청하다가 안되면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는 자가 애통하는 자가 된다.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가난한 자인 것이다. 영적 파산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애통하지 않는 다. 영적 가난 상태를 깨닫는 자가 애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자에게 찾아오시고, 천국을 세워주신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이다. 그래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애통하다는 말은 원통해서 통한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는데, 사탄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장막을 빼앗기고, 물질세계의 흙 속에 갇혀있는 것을 깨닫고 보니, 너무나 원통하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7절에서『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이 세상에 쫒겨온 자들이 빼앗긴 영의 몸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밤낮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택하신 자들은 이런 기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탕자의 비유처럼, 죽은 것같이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개는 옛사람의 죽음이다. 옛사람이 죽어야, 하나님이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신다. 옛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이
죄의 몸 속으로 들어온 것을 깨닫고 애통하는 것이다. 왜 자신이 죄인이 되었는가를 깊히 묵상하지 않으면
애통하는 마음, 돌이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를
깨닫지 못하면 돌이키는 의미도 모르는 것이다.
시편
135편 14절에서『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여기에서『위로』라는
말이 출애굽기 32장 14절에서는『돌이키다』라는 말로 표현되었다.『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사건에서, 모세의 간곡한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돌이키시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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